李萬童
萬童1906. 4. 29 ~ 1987. 8.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광주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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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2) 1906년 4월 29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봉황면(鳳凰面) 용곡리(龍谷里)에서 태어났다. 이규현(李圭鉉)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1928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퇴학당한 5학년생 이경채(李景采)의 복교(復校) 건으로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 6월 26일 5학년 정동화(鄭東華), 4학년 임주홍(林周弘)·박세영(朴世英) 등과 함께 일본인 시라이(白井) 교장에게 하세가와 아사히(長谷川旭) 외 6명의 교사 사직과 ‘조선인본위(朝鮮人本位)’의 교육 실현 및 이경채의 복교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이를 시라이 교장이 수용하지 않자 동맹휴학을 단행하였다. 학생들의 동맹휴학이 시작되자 학교 당국에서는 이동화(李東華) 등 27명을 퇴학시키고 박세홍 등 181명을 무기정학시켰다. 또 임주홍 등에게는 임시정학을 명령하였다. 이에 7월 10일경 광주군 광주면 서남리(瑞南里) 최동문(崔東文) 집에 모여 광주 읍내에 맹휴중앙본부(盟休中央本部)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맹휴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7월 16일에는 정동화·박세영과 함께 광주면 누문리(樓門里) 장모(張某) 집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생도 일동’ 명의로 「학부모에게 고함」이란 통고문 400여 장을 작성, 학부모에게 발송하며 후원을 요청하였다. 7월 20일경에는 변진설(邊鎭契)·박세영 등과 함께 자택에 모여 「집행본부 경과보고」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맹휴투쟁(盟休鬪爭)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피압박 백의민족(白衣民族)의 해방을 위한 것”임을 선언하는 격문 약 60장을 작성해 수십 명의 학생에게 배부하였다. 8월 초 임주홍·박세영 등과 함께 서재호(徐在皓) 집에 모여 「중앙본부의 격문」, 「광주고등보통학교 동맹휴교단」이라는 제목의 일제의 교육정책을 규탄하는 격문 각 400여 장을 작성해 학생과 학부형들에게 배포하였다. 8월 2일에는 최동문 집에 모여 「광주고등보통학교 생도 일동 항의문」이라는 제목의 격문 약 100장을 작성해 광주공립보통학교 교장 등 전라남도 내 각 공립보통학교장에게 보냈다. 이처럼 광주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을 주도한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8년 10월 5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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