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錫埰
錫埰1892. 5. 26 ~ 1948. 3.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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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3) 1892년 5월 26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강동면(江東面) 양동리(良洞里)에서 아버지 이상구(李庠久)와 어머니 밀양(密陽) 박씨(朴氏) 사이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필(卿弼)이며, 이명은 박탁(朴鐸)이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하기 전에는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12월 28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동래면(東萊面) 온천리(溫泉里, 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김천여관에서 동면(同面) 칠산동(七山洞)에 거주하는 이정약(李丁若)에게 벼 100석을 1석당 20원으로 하여 10일 후 현물을 넘겨 판매하는 약속을 하였다. 이어 사흘 뒤인 12월 31일 김천여관에서 돈 1,600원을 받고, 이듬해 1월 8일에는 부산여관에서 돈 400원, 모두 2,000원을 벼의 판매 대금 대가로 받아냈다. 이러한 돈을 임시정부에 전해줄 목적으로 이튿날인 1920년 1월 9일 동래면 온천리를 출발하였다. 1월 17일 만주(滿洲) 류허현(柳河縣)에 도착해 임시정부 요인인 노백린(盧伯麟)을 만나 1,000원을 임시정부 자금으로 전달하였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임시정부의 외무원이 되어 국내의 민정 시찰과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할 인물을 모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1920년 2월 4~5일경에 서울로 몰래 잠입하였다. 그리고 함경남도 원산부(元山府)로 가서 배편으로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주문진(注文津) 항에 도착하였다. 이후 수일간 인근에서 머물며 임시정부에 참여할 만한 인물들을 물색하다가 강릉군 덕방면(德方面) 두산리(斗山里)의 최명일(崔命一)을 찾아가 박탁(朴鐸)이라는 가명으로 한국 독립을 위해 임시정부 요원이 되길 권유하였다. 이어 2월 19일경 강원도 삼척군(三陟郡) 삼척면(三陟面) 읍상리(邑上里)의 김동석(金東錫)을 찾아가 “임시정부는 한국독립을 계획하고 있는데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는 인민이 일치하면 반드시 한국도 가까운 시일에 독립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임시정부에 참여하길 권유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벌이다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0년 4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이른바 사기죄와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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