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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成化

成化

미상 ~ 1907.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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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成化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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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이도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도총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1)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신지역은 확인할 수 없다. 1907년 강원도 정선군(旌善郡)에서 3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활동한 의병장 이도총(李都摠)의 휘하에서 부장(部將)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분노한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동참하면서 항일의병투쟁은 전국으로 확산하였다. 이때 정선군에서 이도총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의병장 이도총은 실명 대신 무관직인 도총(都總)으로 불렸다. 경성(京城) 출신으로 알려져 있어 해산군인으로 추정된다. 1907년 12월 8일 정선군 남면(南面) 증산리(甑山里)에서 이도총 휘하의 의병 250여 명과 함께 주둔하고 있었다. 이때 일본군 보병 14연대 토리카이(鳥飼) 중대가 대대적인 의병부대 토벌을 위해 강원도 삼척(三陟)으로 이동하던 중 이도총 의병부대와 마주하게 되었다. 즉시 전투가 벌어졌고, 해가 질 때까지 전면전이 전개되었다. 이후 이도총 부대원 대부분은 증산리 북쪽으로 5㎞ 정도 떨어진 도사동(道士洞)으로 이동하였고, 일본군 역시 전열을 다시 갖추고 의병부대를 추격하기 위해 도사동으로 밀정을 보내 수색하게 하였다. 일본군은 밀정의 보고를 받은 후 의병부대를 야습(夜襲)하기로 하고, 12월 9일 새벽 2시 증산리에서 도사동으로 이동하여 때를 기다렸다. 오전 6시 아직 숙영 중이던 이도총 의병부대는 정선강 지류를 건너 도사동에 도착한 일본군의 급습을 받고 대부분의 병력을 잃었다. 의병장 이도총과 남은 의병들과 함께 인근의 산으로 도망쳤지만, 일본군은 다시 추격해 포위하며 공격하였다. 결국 의병장 이도총, 부장 김원일(金元日)·장춘삼(張春三)·김명춘(金明春)·이춘화(李春化) 등과 함께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이후 김원일·장춘삼·김명춘·이춘화 등과 더불어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에게 피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신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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