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範壽
範壽1893. 1. 4 ~ 1945. 9.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동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남원군 남원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3년 1월 4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사매면(巳梅面) 대신리(大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조선독립대동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31일 덕과면(德果面) 면장 이석기(李奭器)의 주도로 친족인 이성기(李成器)·이형기(李炯器) 등과 함께 한 번에 많은 인원을 동원해 만세시위를 벌일 방법으로 식수기념일행사를 이용하기로 결의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11년부터 4월 3일을 식목일로 정하고 각 행정 단위와 학교 등에 식목일 행사를 진행하도록 조치했기 때문에 일제의 감시를 피해 많은 인원을 동원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19년 4월 3일 남원읍 식수기념일 행사에서 이석기(李奭器)가 직접 작성한 「경고아동포제군(警告我同胞諸君)」이라는 격문을 뿌리며 만세시위를 벌일 때, 8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시위에 참여하였다. 다음날인 4월 4일 만세시위 중 체포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하여 태극기와 선언문을 사전에 준비하고 남원 북시장(北市場)에서 남문(南門)과 시장을 거쳐 헌병분견소에 이르는 구간에서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행진 후 일제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고향인 남원 대신리(大新里)로 몸을 피하기도 하였다. 이후 형갑수(邢甲洙)·한태현(韓泰鉉)·강경진(姜景鎭) 등과 만나서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을 결의하고 같은 해 (음)7월 대동단에 가입하였다. 대동단은 1920년 김가진(金嘉鎭)을 총재로 김찬규(金燦奎)·박영효(朴泳孝)·민영달(閔泳達) 등이 참가하여 만든 단체로 단원은 귀족, 관리, 유학자, 종교인, 상공인, 청년, 학생, 부녀자 등 각계각층 11개 사회단체 대표자들로 구성되었으며, 비밀 유지를 위해 점조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1920년 7월 중순 경남 진주(晋州) 출신의 대동단원 김재구(金在九)와 남원군 사매면 오신리(梧新里)의 강경진이 만나면서 남원 지방에서의 조직 활동이 시작되었고 대동단 전라북도지부는 서울 본부와의 긴밀한 연락을 하면서 남원에서 활동하였는데, 주된 목표는 항일 운동에 동조하는 지방의 유지들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중앙본부를 통하여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어 붙잡혔다. 1922년 3월 1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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