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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직

李泳稙

188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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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이영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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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명천(明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명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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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1919년 명천군 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1)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서면(西面) 호산동(虎山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8일 명천군 서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함북 명천군 서면의 만세시위는 4월 8일 사립우동학교 교사 유영오(柳泳旿)·차종협(車鍾協) 등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명천군 서면 만세시위는 4월 9, 10일에도 멈추지 않고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자 양화경찰관주재소에서는 4월 11~12일 명천군 서면 양화동 일대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양화동 사립학교 학생 양태운·김태원 등이 4월 13일 만세시위를 계획하면서 준비한 태극기 75기를 압수하고 시위를 계획한 학생 등을 체포하기도 하였다. 4월 14일 서면 명남동·산성동·고성동에서 만세시위가 재개된 것이다. 이는 4월 초순 강승한(姜承翰)의 주도로 계획되었다. 이에 이학복(李鶴馥) 등 동지들이 규합하여 태극기 제작 등 준비에 착수하였다. 4월 14일 오후 1시 무렵 명동학교 뒤편의 하천에서 강승한·이학복·이서규·이현구(李賢求)의 주도로 태극기를 흔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참여하여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대를 이루어 서면의 명남동·신성동 일대를 행진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경찰들이 강압적으로 시위대의 해산을 종용하자, 오후 2시 무렵 시위대는 자진해서 해산하였다. 그런데 오후 2시 무렵 고성동에서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가 시작되었다. 시위대는 면소재지가 위치한 입석동으로 출발하자 면장, 순사보가 시위대를 막고 해산을 종용하였다. 결국 오후 4시 무렵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일제 군경은 4월 14일 서면의 만세시위에 참여한 인사들을 색출해서 체포하였다. 그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2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서 항소하였으며 1919년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를 기각하였다. 이에 무죄를 주장하면서 상고하였지만 1919년 10월 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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