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英儀
英儀1890. 8. 1 ~ 1980. 4.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임실군 둔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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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0년 8월 1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용정리(龍井里)에서 태어났다. 고향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獒樹里)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오수리에서는 1919년 3월 23일 마을 장날을 기하여 그날 오후 2시부터 장터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때 시위를 주도한 것은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 등 둔남면 일대의 주민들로, 이들은 대개 천도교도(天道敎徒)이거나 기독교도(基督敎徒)들이었다. 그날 오후 시위가 한창 전개되고 있던 중, 조선인 순사보인 고택기(高宅基)가 시위 주도자 중 한명인 이기송을 체포하여 관내 주재소로 연행하였다. 그러자 이만의(李萬儀)·이병렬(李秉烈)·김일봉(金一奉) 등 8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 앞으로 달려가 이기송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의 창문에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한 항의를 벌였다. 이에 놀란 일본인 순사가 이기송·김영필(金永弼) 등을 석방하였고, 이에 고무된 시위 군중은 다시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후 다른 시위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면서, 부근의 일본인 상점을 부수는 등 격렬한 저항 활동에 동참하였으며, 면사무소에 도착해서는 면장과 면서기들을 불러 함께 독립만세에 동참할 것을 강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날 저녁 헌병 분대가 출동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했으며, 이로 인해 시위대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다른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일제의 검속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7월 3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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