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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덕

金木德

1879. 8. 13 ~ 1950.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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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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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영해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79년 8월 13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 성내동(城內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영해면 장날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 만세 운동은 정규하(丁奎河) 등의 발의에 따라 여타 사람들이 찬성하면서 이루어졌으며, 장날에 모인 군중 2,000여 명이 ‘독립 만세’를 고창하면서 전개되었다. 또한 영해 장날의 만세 시위에는 영해면민뿐 아니라 인근 영덕 각지의 면민들이 합세하였다. 이날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행진하던 중 영해경찰주재소에 이르자 해산을 요구하는 주임순사 스즈키(鈴木鶴次郞)에 달려들어 구타하고, 제복과 제모 그리고 패용한 칼 등을 훼손하였다. 또 기왓장을 던지며 곤봉을 들고 습격하여 총기, 탄약, 기물, 서류를 파기하였다. 영해공립보통학교에 가서는 교사 배병열(裵秉烈)과 학생들에게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고 학교에 있던 일본인 소유의 기왓장과 송판 등을 부수고, 학교 문서와 기구, 교사의 물품 등을 훼손하였다. 영해면사무소와 영해우편소의 창과 기물도 부수었다. 이에 급보를 받고 출동한 영덕경찰서장 나카시게(長茂義孫) 등 4명이 시장 부근에 모여 있던 시위대에게 해산을 종용하였으나 시위대는 기왓장, 돌 그리고 곤봉을 휘두르며 대항하였다. 또한 시위대는 영덕경찰서장 등이 해산을 포기하고 본서로 돌아가려 하자 서장 일행을 포위하고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총기와 칼을 빼앗고 제복과 모자를 찢어 버리며 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들은 시위대의 공격을 받고 타박상을 입었다. 이날 만세 시위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경찰에 붙잡혀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공무집행방해·상해·건조물 손괴·기물 파괴·공문서 훼기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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