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淳載
淳載1891. 6. 3 ~ 1944. 6.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양주군 진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6월 3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진접면(搸接面) 부평리(富坪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방남(李芳南)이다. 부평리에 위치한 봉선사(奉先寺)의 승려로 수행하였다. 서울과 인접한 양주군에서는 3월 13일 미금면(渼金面)에서 처음으로 만세시위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14일에는 와부면(瓦阜面)·주내면(州內面)·진접면, 15일에는 와부면, 18일 화도면(和道面)에서도 만세시위가 잇따라 전개되었다. 하지만 이후 양주군의 만세운동은 한동안 소강 상태를 유지하였다. 3월 말이 되자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 봉선사에서 만세시위가 계획되고 준비되었다. 김석로(金錫魯)·김성암(金星岩) 등과 함께 이전부터 한국의 독립을 희망해 오던 부평리 주민들과 함께 3월 29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해 봉선사 서기실에서 「조선독립단 임시사무소」란 명의로 “현재 파리강화회의에서는 12개국을 독립시키기로 결정해 놓고 있다”, “이제 조선도 이 기회에 극력 소요를 계속하여 독립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격문을 만들고, 등사판으로 약 200장을 인쇄하였다. 이후 김석로·강완수(姜完洙) 외 1명과 함께 밤 9시 경부터 다음날 새벽 5시 경까지 앞서 제작한 문서를 인근 부평리·진벌리(榛伐里)·중촌리(中村里)·팔현리 등에 배포하였다. 한편 이러한 활동은 3월 31일 진접면 광릉천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영향을 주었다.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 주민인 이재일(李載日)은 독립을 목적으로 마을 주민 일동이 광릉천 모래밭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는 취지의 문서를 받아 주민들에게 돌려보게 하였다. 그리고 3월 31일 이재일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만세시위를 위해 모일 것을 독려하였다. 이에 양삼돌(梁三乭)·최영갑(崔永甲) 등이 적극적으로 동참한 가운데 이재일은 시위군중 약 100~200명과 더불어 광릉천 모래밭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조선독립단 명의로 ‘불온문서’를 인쇄해 치안을 방해한 행동에 대해 이른바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자신들의 행위가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와 인도에 근거해 발동한 것이므로 범죄라 인정할 수 없다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