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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壽浩

壽浩

1895. 12. 17 ~ 1948.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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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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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山淸)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산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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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산청군 신등면
  • · 단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95년 12월 17일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당산리(堂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21일 경남 산청군 신등면(新等面) 단계리(丹溪里)와 단성면 성내리(城內里)에서 펼쳐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산청군에서는 3월 19일 신등면에서 주민 100여 명이 만세시위를 시작한 이후 3월 23일까지 지속되었다. 산청군의 만세운동은 명망있던 유림 김영숙(金永淑)의 아들 김상준(金相峻)과 윤규현(尹圭鉉)이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김영숙은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과 같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신등면 최초의 시위인 3월 19일 만세시위에서 약 20명이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연행되자, 김영숙·정태륜(鄭泰侖)·김상호(金相浩) 등은 이튿날인 3월 20일 단계리시장과 3월 21일 단성면 성내리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계속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독립선언서와 정태륜이 작성한 격문 등을 등사하고, 대한독립만세 깃발도 제작하였다. 3월 20일 오후 2시 단계리 시장에서 큰 태극기를 세우고 모인 600~700명의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단성면 성내리로 이동하면서 인근 주민들이 합세하여 시위대는 1,0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일제 헌병대는 전날 연행한 김상준 등 5명을 석방하며 시위대의 해산을 회유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시위대는 밤늦게까지 단성 읍내에서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하지만 진주와 거창에서 지원 병력이 도착해 시위를 진압하면서 다수의 주도자가 체포되고 시위대도 강제로 해산되었다. 3월 21일 단성면 성내리에는 장날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오전 11시경 만세시위가 시작되고 800~1,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전날 검거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단성헌병주재소로 몰려갔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고, 헌병에게 체포된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면서 만세시위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시위대를 향해 헌병대의 무차별적 총격이 가해지며 11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1919년 8월 1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겪다가 1920년 8월 10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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