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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聖濟

聖濟

미상 ~ 1919.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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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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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홍원(洪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홍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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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원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출신이다. 출생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자료에 따르면 천도교인으로 보인다. 1919년 3월 16일 홍원군 주익면(州翼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제작된 독립선언서는 천도교인을 통해 3월 1일 홍원군에 전달되었고, 이를 계기로 3월 7일 강남섭·강인택·김세경(金世暻)·김한욱(金漢郁) 등 홍원교구의 지도자들이 홍원교구에서 회합하였다. 이들은 주익면(州翼面, 이후 홍원읍)의 면 소재지인 성동리(城東里)의 장날인 16일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6일 주익면 성동리 장터에는 장날을 맞아 수백 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오전 11시가 되자,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공성상회(共誠商會)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였다. 먼저 강인택과 김상봉(金相鳳)의 연설을 시작으로 시위 대열이 갖춰졌다. 연설이 끝나고 깃발을 든 김기흥(金基興)을 선두로 700여 명의 군중이 홍원군청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 때 참여하여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홍원군청 앞까지 행진하였다. 홍원군청 앞에 다다르자, 시위대와 함께 더욱 큰 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경찰은 시위 주도자 등에게 준비했던 붉은색 잉크를 뿌리면서, 시위를 제지하였다. 이후 경찰은 옷에 붉은색 잉크가 묻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60여 명의 시위대를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함흥검사국으로 압송되었다. 조사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고, 결국 1919년 3월 2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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