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性用
性用1875. 11. 1 ~ 1920. 10.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삼성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75년 11월 1일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 삼성면(三成面) 선정리(仙井里)에서 이호성(李鎬聖)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덕경(德敬)이다. 1919년 4월 2일 삼성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음성군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고 삼성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 해 4월 2일 밤 동리의 주민들에게 나라의 독립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였다. 80여 명의 주민들이 공감하자, 이들을 규합하여 동리의 뒷산으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한동안 산 위에서 ‘독립만세’를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횃불 만세시위를 전개했음에도 일본 경찰들의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만세시위를 통해 기세가 오른 주민들을 지휘하여 ‘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천평리에 소재한 일제의 경찰주재소로 행진하여, 경찰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경찰이 만세시위를 제지하며 즉시 해산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더욱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가 추가되어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이에 “본인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근거한 의사 발동으로 범죄가 아니므로 제1심 및 제2심의 유죄 판결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였다. 그럼에도 일제 경찰의 감시와 탄압이 계속되자, 1920년 10월 3일 ‘절개를 지켜 죽는 것이 마땅하다’라는 의미의 「수절사의(守節死宜)」라는 유서를 남기고, 마을 뒷산 버드나무에 목을 매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