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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成榮

成榮

1878. 3. 30 ~ 1940.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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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成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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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주(蔚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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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울주군 언양면(4.2)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8년 3월 30일 경상남도 울주군(蔚州郡) 상남면(上南面) 길천리(吉川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어린 시절 한학(漢學)을 수학하였으며, 이후 천도교인이 되었다. 1919년 4월 2일 언양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2월 천도교 울산교구장 김교경(金敎慶)이 고종의 장례에 참여하기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만세운동을 접하고 울산 지역에 소식을 알렸다. 동료 천도교인들과 함께 이 소식을 듣고 서울의 천도교 본부와 연락하여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하였다. 동료들과 만세시위 거사일을 언양장날인 4월 2일로 정하고 주민들에게 배포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4월 2일 동료들과 함께 언양면 남부리(南部里) 장터로 향하였다. 일제 경찰이 장터를 감시하였으나, 장터의 중심 도로로 나와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면서 큰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장터의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만세시위에 공감한 장터의 주민들이 일제히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면서 만세시위에 동참하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1,000여 명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에 시위대를 지휘하여 남부리 장터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를 경계하던 장터에서 순식간에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일제 경찰이 곧바로 출동하여 만세시위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이를 거부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계속하자, 일제 경찰은 주도자로 보이는 인물들을 강압적으로 체포하여 언양주재소로 연행하였다. 평화롭게 전개하는 만세시위를 폭력으로 제지하고, 주도자들을 강제 연행하는 일제 경찰의 행태는 시위대를 크게 자극하였다. 이에 시위대를 이끌고 언양주재소로 가서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일제 경찰에 공포탄을 발포하며 위협하자, 분노한 주민들은 곧바로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는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이들을 지휘하여 주재소로 진입하여 일제 경찰의 무장해제를 시도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일제 경찰의 발포로 사망자가 나왔으며 이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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