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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聖範

聖範

1881. 4. 10 ~ 1957.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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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聖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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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尙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상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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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상주군 화북면(4.8)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1년 4월 10일 경상북도 상주군(尙州郡) 화북면(化北面) 장암리(壯岩里)에서 태어났다. 장암리 마을의 유지로 장암동 구장을 지냈다. 1919년 4월 8일 상주군 화북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상주군에서도 3월 23일 상주면 장날에 한암회(韓岩回)·강용석(姜龍錫)·조월연(趙月衍) 등 학생들이 주도를 하고 많은 군중이 시위에 동참하면서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장암리 만세시위는 상주면 만세시위에 이어 상주군에서 두 번째로 일어난 만세시위였다.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김재갑(金在甲)·홍종흠(洪鍾欽)·이용회(李容晦) 등 마을 유지들을 찾아가 만세운동을 거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비밀리에 모여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한 결과 4월 8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장소는 마을에서 가까운 속리산(俗離山) 문장대(文藏臺)에서 하기로 협의하였으며, 4월 초부터 만세운동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4월 4일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권고문을 작성하여 면 안의 각처에 보내어 많은 사람들이 만세운동의 의미를 깨닫고 동참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만세운동에 쓰일 태극기 두 장을 직접 제작하였다. 또한 마을 청년들을 모아 놓고 “우리의 힘으로 일본을 몰아내고 조국의 독립을 이룩하자”고 설득하여 많은 청년들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4월 8일 오후 2시 김재갑·홍종흠 등과 만세시위에 참여한 마을 주민 100여 명이 함께 문장대(文藏臺)에 올라가 옷 속에 품고 온 태극기를 꺼내어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연이어 ‘독립만세’를 불렀고 만세 소리는 마을 밖까지 들릴 만큼 크고 힘찼다. 만세시위 소식을 접하게 된 일제 경찰은 즉시 상주 헌병분대 4명과 수비대 보병 하사 이하 8명으로 구성된 병력을 출동시켰다. 출동한 일제 헌병 대원들은 무력으로 군중들을 해산시키려고 하였고, 이러한 일본 헌병들 대항하여 마을 청년들은 돌을 던지며 투석전을 벌여 막고자 하였다. 그러나 청년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군중은 끝내 무력으로 해산 당하였으며, 현장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9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3월을 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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