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金萬福1902. 10. 7 ~ 1925. 1.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금마면과 홍성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902년 10월 7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장성리(長城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 금마면 가산리의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 만세 시위를 준비하고 주도한 중심 인물은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이었다. 이들은 만세 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서로 의논하고,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을 준비 과정에서 동지로 확보하면서 만세 운동 계획을 구체화하였다. 가산리에서는 4월 1일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공연 장소는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 공연장이었다. 이에 민영갑·이재만 등은 이 연극 공연에 다수의 주민이 관람하러 모이면, 그 자리에서 주민들에게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여 만세 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예정대로 4월 1일 연극 공연이 시작하자,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한참 연극 관람 중이었던 오후 8시 경부터 ‘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관람을 위해 모인 주민들에게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다른 관객 수십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만세 시위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으나, 다음 날에도 지속되었다. 가산리 연극 공연장 만세 시위의 중심 인물인 민영갑·이재만 등과 함께 4월 2일 홍성면 홍성시장으로 나가 전날에 이어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에 시장에 나온 많은 수의 군중이 참여하면서 시위 규모는 수백 명으로 확대되었다. 이들과 함께 홍성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 만세’를 외치며 적극적으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시위 이후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에 구금되었다. 4월 14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처분에서 태형 90도의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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