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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成烈

成烈

1891. 5. 3 ~ 1949.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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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成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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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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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성군 원곡면.양성면(4.1)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5월 3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광국(李光國)·이석렬(李石烈)이다. 1919년 안성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부터 안성군 원곡면(元谷面)과 양성면(陽城面)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으며, 이 시위는 그해 4월 1일 두 지역 주민 약 2,000명이 참여한 대규모 연합 만세시위로 확대되었다. 이날 연합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일제 경찰 주재소로 행진하여 ‘독립만세’를 외친 후,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져 주재소의 유리창 등을 깨뜨렸다. 일제 경찰들이 놀라 도주하자 주재소 건물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 이후 우편소로 이동하여 돌을 던지고, 우편소의 서류와 집기들을 다 들어내 앞마당에서 모두 소각시켰다. 그리고 평소 주민들에게 원성이 높았던 일본인 부호의 집과 상점을 향해 돌을 던지고, 기물과 가구 등을 불태웠다. 양성면에서 자정이 넘도록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원곡면 면사무소 앞으로 이동하여 면사무소를 향해 돌을 던지며 다시 한 차례 만세시위를 전개 하였다. 이후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4월 3일 일본군이 만세시위 참여자들을 대대적으로 검속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이른바 내란죄 혐의에 대해 “만세시위가 소요죄를 구성할 수는 있어도 내란죄를 구성할 수는 없다”라며 기각되었다. 1920년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에 대해 ‘본건 공소를 수리하지 않음’이 결정되었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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