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俊根
俊根미상 ~ 1931
관련 단체
- · 재만한족총연합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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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일자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만주로 이주한 이후, 1929년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을 조직하고, 재만한족총연합회(在滿韓族總聯合會)에서 활동하였다. 1928년 무렵 북만주 일대의 한인 자치단체인 신민부(新民部) 관할의 신안진(新安鎭)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1929년 7월 하이린(海林)에서 김좌진(金佐鎭)의 6촌동생 김종진(金宗鎭)을 비롯한 이을규(李乙奎)·김야운(金野雲)·이달(李達)·이강훈(李康勳) 등과 함께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이하 연맹)을 조직하였다. 연맹은 무지배 사회의 구현과 상호부조적 자유합작 등을 강령으로 내세우며 신민부 개편안을 제출하였고, 이후 1929년 7월 21일 신민부를 ‘재만동포들의 자주자치적 협동조직체’를 표방하는 한족총연합회로 전환시켰다. 이때 한족총연합회 차장으로 임명되어 조직을 운영하였다. 한족총연합회는 동포들의 토지 교섭은 물론 교육사업에 치중하여 3개 학교를 신설한 것을 비롯해 50여 개의 소학교를 운영하였다. 나아가 중등학교를 설립해 조직과 간부를 훈련시키고자 북만중학(北滿中學)기성회를 조직하여 교지확보를 위한 교섭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한족총연합회의 변화와 발전에 대해 한인 공산주의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썼는데, 1930년 1월 24일 김좌진 위원장을 암살하였다. 나아가 공산주의자들은 중국 관헌을 이용해 김종진과 이을규와 더불어 그를 체포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31년 7월 한족총연합회의 재건 움직임에 일부 민족주의 세력이 위기감을 느끼고 공세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밀을 지키기 위해 한족총연합회의 주요 간부 암살에 나섰다. 같은 달 초순 석두하자(石頭河子)에서 전략협의를 위해 김좌진의 동생 김동진(金東鎭)의 집에 모인 김야운과 함께 군사위원회 별동대 제3대장인 이백호(李白虎)와 이익화(李益和)·박태춘(朴泰春) 등의 습격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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