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賢
相賢1886. 2. 24 ~ 1919. 3.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7)
관련 사건
- · 1919년 합천군 삼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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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7) 1886년 2월 24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삼가면(三嘉面) 두모리(斗毛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현종(李鉉宗)이다. 1919년 3월 23일 합천군에서 가장 큰 규모로 전개되었던 삼가면 삼가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희생되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독립선언서를 접한 합천군의 지역 인사들은 이를 계기로 합천군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3월 18일 상백면(上栢面)·백산면(栢山面)·가회면(佳會面) 등의 주민들이 연합하여 거행된 삼가면 읍내 만세시위 이후 군내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3월 18일 삼가면 만세시위를 주도한 지도자들은 규모를 확대하여 3월 23일 삼가면 삼가시장에서 재차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3월 23일 펼쳐진 만세시위에는 합천군의 여러 지역과 인근 의령군(宜寧郡)의 주민들까지 합세하여, 10,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였다. 오후 3시 정금당(正衿堂) 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는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성토대회와 독립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연설 등으로 이어지면서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 총기를 무차별 발포하는 등 폭력적으로 만세시위를 진압하였다. 특히 마지막 연설자였던 임종봉(林鍾鳳)이 연설 도중에 일제 군경이 쏜 총탄을 맞고 쓰러지자, 이를 목격한 군중들은 분노하며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처럼 만세시위의 양상이 급변하자 시위대와 함께 곤봉·낫·호미 등으로 무장하고, 우편소·주재소 등 일제의 통치기관을 향해 진격하였다. 그러나 시위대를 향한 일제 군경의 무차별 발포가 이어지면서 현장에서는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시위대를 선두에서 이끌며 맹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제 군경이 가한 총격으로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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