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大憲
大憲1883. 11. 14 ~ 1944. 6.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군 동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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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3년 11월 14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동부면(東部面) 교산리(校山里, 현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광주군 동부면의 구장으로, 동부면 교산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광주군의 서쪽 일대는 서울과 인접한 지역으로, 1919년 3월 20일을 전후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달 21일 중대면(中垈面) 송파리(松坡里)에 거주하는 김준현(金俊賢)은 장덕균(張德均)의 집에서 그와 함께 조선독립선언서 20장과 『조선독립신문(朝鮮獨立新聞)』 30장을 인쇄하였다. 3월 25일 장덕균과 김준현은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정석호(鄭錫浩)와 한강 이북에 사는 성명 미상의 인물에게 인쇄물을 배포하였다가 일제 군경에 체포되었다. 하지만 장덕균과 김준현의 체포를 기점으로 광주 일대에서는 3월 27일을 전후로 만세시위와 봉화, 횃불을 이용한 야간 만세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27일 동부면(東部面) 교산리(校山里)와 망월리(望月里)에서는 그 마을의 구장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교산리 구장으로서 최창근(崔昌根)으로부터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만세시위 소식을 전해 들은 후, 교산리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3월 26일 동부면 면사무소 앞에서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3월 27일 새벽 2시경 마을 사람 10여 명과 함께 미리 제작한 태극기를 흔들면서 뒷산에 올라가서 봉화를 올리면서 1시간 동안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3시 무렵 뒷산에서 하산해서 3시 30분부터 동부면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오전 11시경부터 오후 2시까지 동네 주민 30여 명과 함께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일제 군경에 동부면 교산리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다. 같은 해 7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본인의 행위를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기초한 의사에서 나온 행위”임으로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 해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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