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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奎麟

奎麟

1856. 3. 26 ~ 1937. 10. 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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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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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 · 제2차 유림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56년 3월 26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熊村面) 석천리(石川里)에서 이하찬(李夏燦)과 울산 박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본적은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웅상면(熊上面) 주남리(周南里)이다. 본관은 울산(蔚山)이고, 자는 헌길(軒吉)이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이규린(李圭麟)이다. 1919년 유림들의 파리장서운동에 서명자로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유림계 내부에서는 독립선언서 발표에 유림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고, 독자적으로 독립청원운동을 결의하였다. 유림은 곽종석(郭鍾錫)을 대표로 추대하고, 김창숙(金昌淑) 등 전국 유림에게 독립청원의 결의를 알렸다. 이에 참여하여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에 서명한 137명 중 136위로 서명하였다. 1926년 김창숙이 주도한 이른바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하였다. 김창숙은 중국 내몽골 지역에 독립운동 기지를 설립하기 위한 군자금 20만원 모집을 목표로 국내에 들어와 1925년 8월부터 1926년 3월까지 영남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이때 김창숙의 활동을 도왔다는 이유로 1926년 3월에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예심 결과 1927년 1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면소를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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