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光春

光春

1914. 9. 8 ~ 2010. 4. 1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光春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남 나주(羅州)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6)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6) 1914년 9월 8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나주면(羅州面) 박정리(朴丁里)에서 태어났다.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9년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의 발단이 되었던 사건의 주인공이다. 1929년 10월 30일 오후 5시 30분경 광주발 통학 열차가 나주에 도착하자 친구 박기옥(朴己玉)·이금자(李錦子) 등과 함께 열차를 타기 위해 개찰구로 걸어 나가고 있었는데, 곁에 있던 일본인 중학생이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모욕적인 발언과 조롱을 하였다. 이때 박기옥의 사촌 남동생인 광주고등보통학교 2학년 박준채(朴準埰) 등이 격분하여 일본인 중학생과 충돌하였다. 출동한 일제 경찰은 일본인 학생을 편들며 박준채를 구타하였다. 이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인 최희선(崔熙善)·김보섭(金普燮) 등 10여 명이 박준채와 합세하여 항의하였다. 이 일이 발단이 되어 광주학생운동으로 확대되었다.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벌이자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시위에 참가하였다. 학생들은 ‘독립만세’를 외치고 운동가를 고창하며 시내를 행진하다가 해산하였는데, 이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이후에도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광주지역 학교들은 임시 휴교에 들어갔다. 12월 휴교로 닫혔던 교문이 열렸고, 1월에는 2학기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 무렵 광주 지역 학생들의 시위 소식은 전국으로 퍼져 전국 각처에서 학생시위가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각 학교를 중심으로 다시 학생시위가 계획되었는데, 학생들은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는 ‘백지동맹’을 시작하며 일제와 학교 당국에 저항하였다. ‘백지동맹’은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도 시작되었는데, 시험시간 중 돌연 교단으로 뛰어 올라가 “우리는 좌우간에 동일한 행동을 취하지 아니하면 안 되겠다”라는 의미의 격려 연설을 하며 시험을 거부하자는 ‘백지동맹’을 주도하였다. 이 일로 이튿날 자택에서 일제 경찰에 연행되었고, 학교에서도 퇴학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하지영⋮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