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國英
國英1921. 1. 15 ~ 1956. 2.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한국혁명여성동맹
- · 한국독립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1년 1월 15일 충청북도 청주(淸州) 출신의 아버지 이광(李光)과 어머니 김수현(金秀賢)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충북 청주이나 출생지는 중국으로 추정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독립운동가이며, 남편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민영구(閔泳玖)이다. 동생 이윤장(李允章)과 이윤철(李允哲)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와 한국광복군 활동에 참여하였다. 1938년 11월 광시성(廣西省) 류저우(柳州)에서 임시정부 요인의 가족 가운데 청년들을 중심으로 항일의식 고양을 위한 홍보, 연극, 무용공연 등 선전활동을 하기 위해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가 조직되었다. 모두 34명이었는데, 이 중 11명이 여성대원이었다. 여기에 지복영(池復榮)·오광심(吳光心)·오희영(吳姬英)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30년대 여러 차례 본거지를 옮겼던 임시정부가 1940년 충칭(重慶)에 정착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40년 6월 임시정부 내에 방순희(方順熙)를 회장, 김효숙(金孝淑)을 부회장으로 한 여성단체인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이 창립될 때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주로 독립운동가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의 교육을 중심으로 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충칭에 거주하는 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한 한인 교포의 자제들을 교육할 목적으로 설립한 3·1유치원에서 연미당(延薇堂)·강영파(姜暎波)·정정화(鄭靖和) 등과 함께 교사로 활동하였다. 임시정부 행정부에도 참여하였는데, 1943년 5월 29일 중국 내 교포의 생활과 지위 향상을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설치된 생계부(生計部)의 생계위원(生計委員)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한편, 1940년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한국독립당 3당이 통합하여 통합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이 창당된 이후, 여성들도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연미당·오희영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한국독립당 제2구(第二區) 당원으로 독립운동의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1945년 8월 광복을 맞이했으나 곧바로 귀국하지 못하였다. 남편인 민영구가 해방 직후에도 중국에 남아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총무처장을 맡아 중국 정부와의 연락업무와 교포 송환 문제 등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민영구가 역할을 마무리한 후 1947년 11월이 되어 함께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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