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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奉哲

奉哲

1884. 2. 3 ~ 1941.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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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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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統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통영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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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통영군 통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2) 1884년 2월 3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도천리(道泉里)에서 출생하였다. 이후 분가하여 서호동(西湖洞)에 거주하였다. 친형인 이성철(李性哲)과 함께 1919년 3월 18일 통영군 통영면 부도정(敷島町)시장(현 통영중앙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통영 만세운동은 3월 9일부터 진행되었으나, 두차례의 만세운동 계획이 모두 사전에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다. 이후 최초의 만세운동은 3월 18일 부도정시장에서 일어났다. 이전에 좌절된 두차례 만세운동 계획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친형 이성철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통영에서는 3월 1일 이래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한 후 귀향한 학생들과 지역의 기독교도들을 중심으로 최초의 만세운동 계획이 진행되었다. 진평헌(陳平軒) 등 청년 18명은 비밀리에 3월 9일과 12일 두차례의 회합을 통하여 통영에서의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3월 13일부터 통영면사무소 서기인 이학이(李學伊)에게 빌린 면사무소의 등사판으로 「동포에게 격(檄)하노라」라는 격문 1,200장을 등사하였고, 주민들에게 배포할 태극기도 제작하였다. 그러나 격문의 등사를 위해 필요한 재료 구입에서 단서를 잡은 일제 경찰에게 3월 14일 전원 체포되었다. 한편, 문복숙(文福淑)과 김순이(金順伊) 등 유치원의 보모로 근무하던 여성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밤을 새워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세운동을 준비했으나, 역시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3월 14일 새벽 검거되었다. 이로써 통영에서 준비되고 있던 모든 만세운동 계획이 좌절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형 이성철과 논의하여 부도정시장의 장날인 3월 18일을 만세운동의 거사일로 정하고,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형과 함께 만세시위에서 주민들에게 배포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큰 글씨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대형 깃발을 제작하였다. 3월 18일 오후 3시경 이성철과 함께 부도정시장의 한복판으로 나가 사전에 준비한 ‘대한독립만세’의 대형 깃발을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장터의 주민들에게 배포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대형 깃발을 휘두르며 ‘대한독립만세’라고 큰 목소리로 외치자, 장터에 나온 많은 주민들이 호응하여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따라 외쳤다. 이성철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시장 곳곳을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곧바로 출동한 일제 경찰이 폭력적으로 만세시위를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형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 일로 1919년 4월 19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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