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文載
文載1898. 10. 20 ~ 1950. 6.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장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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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6) 1898년 10월 20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 화계리(花溪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홍성군 장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장곡면의 만세시위는 1919년 4월 4일 윤형중(尹衡重)·윤익중(尹益重)·윤낙중(尹樂重) 3형제가 주도하여 화계리·광성리·신풍리의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매봉산으로 올라가서 횃불만세운동을 일으킨 것이 시작이었다. 뒤이어 4월 7일에는 가송리(佳松里)의 김동하(金東河)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만세운동을 위하여 화계리 마을 앞산에서 열린 집회에 윤익중·윤낙중·윤형중과 함께 참석하였다. 여기서 4월 4일의 횃불만세시위를 계승하여 만세시위를 벌이자는 주장이 나왔고, 이에 참석자 다수와 함께 호응하여 시위 대열을 조직하였다. 김동하의 지휘로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 소재지인 도산리(道山里)로 행진하였다. 도산리로 가는 길목에서 이를 목격한 광성리와 가송리의 주민들도 다수 합류하였다. 면사무소 앞에 도착하여 시위대와 함께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정문 기둥을 부수는 등 공격에 참여하였다. 이와 같이 격렬한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면서 무력으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김동하·윤낙중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같은 해 8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10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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