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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建世

建世

188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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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建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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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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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인국민회
  • · 한인자성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7) 서울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9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이건세(李健世)를 사용하였다. 1903년 이후 멕시코 유카탄(Yucatan)으로 노동이민을 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1911년 11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 법무로 선임되었다. 1912년 생계를 위해 베라크루스(Veracuruz) 와하케뇨(Oaxzqueno) 지방으로 이주하여, 오악기나지방회(五岳基那地方會) 설립을 주도하고 재무와 학무로 활동하였다. 1913년 5월 멕시코시티(Mexico City)로 이주하여 멕시코시티지방회에 가입하였다. 1913년 6월 멕시코시티지방회 총무를 맡았으며, 1914년 1월에는 서기로 활동하였다. 1918년 2월에는 베라쿠르즈(Veracruz)지방 대표로 멕시코 5개 지역 대표자와 함께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에 참석하여 멕시코연합지방회 설립을 청원하였다. 1918년부터 1919년까지 멕시코시티지방회 회장으로 대한인국민회 창립기념식과 3·1독립선언기념식 등에서 연설하였다.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경축식을 거행하였고, 임시정부 후원을 위해 매년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였다. 이후 탐피코(Tampico)로 이주하여 1921년 탐피코지방회에서 재무를 맡았다. 1922년에는 법무를, 1923년부터 1925년까지는 회장을 역임하였다. 1926년에는 대의원으로, 1927년에는 서기 겸 재무로 선임되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1928년 9월 다시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1929년 멕시코시티지방회의 서기, 1930년 재무, 1935년 서기로 활동하였다. 1935년 6월에는 멕시코시티지방회와 신설 한인단체인 한인자성단이 연합공동회를 개최하자 합동위원으로 선정되어 두 단체의 통합을 이끌었다. 한인자성단은 1930년 대한인국민회에 대항하여 결성되었는데 『신한민보』에 멕시코 한인 부인들을 모욕하는 글이 게재되자 이에 대해 반박하고 신한민보사를 규탄하였다. 1938년 멕시코시티지방회 집행위원장, 1939년 선전위원, 1942년부터 1943년까지는 감찰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감찰위원으로 활동 당시에는 지방회 유지를 위한 적립금 모집을 주장하였으며,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그 사이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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