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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진

李鳳珍

1904. 7. 14 ~ 1969.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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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이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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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선천(宣川)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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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관련 사건

  • · 6.10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904년 7월 14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군산면(郡山面) 용동(龍洞)에서 태어났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1926년 6·10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26년 4월 순종이 사망하자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이 연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고, 학생층에서도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거사일은 순종의 인산일인 6월 10일로 정하였다. 거사 당일인 6월 10일 일본군과 경찰이 서울 시내를 경비하는 가운데서도 학생들은 인산 행렬이 지나는 곳곳에서 격문을 뿌리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일로 연희전문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이후 만주(滿洲)로 이동하여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소속 청년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조선박람회 기간을 이용해 군자금을 모금할 목적으로 국내로 들어오다가 전무식(田武植)·전의창(田義昌)·황하수(黃河秀) 등과 함께 경의선 열차 안에서 붙잡혔다. 선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후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다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가 평양경찰서에 붙잡혔다. 1931년 9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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