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南順
南順1904. 12. 3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관련 사건
- · 정명여학교 독립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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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2) 1904년 12월 30일 전라남도 목포부(木浦府) 온금동(溫錦洞)에서 태어났다. 목포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에서 수학하였으며, 1921년 워싱턴회의에 한국의 독립 문제를 상정시킬 목적으로 전개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21년 11월 정명여학교 학생들은 『동아일보』 등 신문을 읽으면서 미국 워싱턴에서 태평양 연안 각 나라의 대표가 참석하는 회의가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민족 대표자도 이 회의에 참석할 것이므로 여론을 환기하여 한국인 대표자를 성원하는 한편 독립 희망을 각국 전권위원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11월 13일 일요일 오후 4시경 천귀례(千貴禮)·곽희주(郭喜主)·김나열(金羅烈)·박음전(朴陰田)·문복금(文卜今)·김연순(金蓮順)·박복술(朴福述)·주유금(朱有今)·김옥실(金玉實)·김정애(金貞愛)·김자현(金慈賢) 등 12명의 여학생들이 기숙사 내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고, 이튿날인 14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이어 태극기 수십 장을 제작하며 시위를 준비하였다. 11월 14일 정오 학생들은 오포(午砲)를 신호로 삼아 학교 정문을 나섰다. 각자 휴대한 태극기를 휘두르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남교동(南橋洞) 방면으로 행진하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교정에 떨어져 있는 태극기를 주워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대를 따라갔는데, 남교동에서 동부 죽동(竹洞)을 거쳐 창평정(昌平町)·대정정(大正町)까지 행진하였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12월 23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1922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으며, 1922년 7월 23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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