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秉湖
秉湖1875. 11. 1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동교육회
- · 대동보국회
- ·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 · 북미지방총회
- · 아이드리아지방회
- · 재미국민대회
- · 태프트지방회
- · 나성지방회
- · 맨티카지방회
- · 삭도지방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6) 1875년 11월 18일 평안북도 초산군(楚山郡) 서하면(西下面) 고성리(古城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교준(李敎鐏), 어머니는 김씨(金氏)이다. 대동교육회(大東敎育會), 나성지방회(羅城地方會) 등 미주지역 독립운동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직후 11월에 남가주(南加州) 패서디나(Pasadena) 지방에서 안정수(安定洙)·김우제(金愚濟)·변창수(邊昌洙) 등과 “군국(君國)을 지키기 위해 군민(軍民)을 양성하는 국민계몽을 통해서 국권을 회복한다”라는 목적으로 대동교육회를 설립하였다. 1907년 3월 2일 장경(張景)·문양목(文讓穆)·장인환(張仁煥)·윤응오·최윤백 등과 함께 대동교육회를 확대 개편하여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에 선임되었다. 11월에는 『신한민보』에 「선각자를 부르노라(大呼先覺者)」라는 글을 투고하여, “군인적인 정신과 군사교육을 통해서 신한국의 국민을 만들어 독립을 쟁취하자”라고 역설하였다. 1911년 8월에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법무원으로 선정되었다. 1912년 3월부터 1913년 6월까지는 아이드리아 지방 경찰소 의무금 수봉위원으로 임명되어, 독립운동 자금 모집 노력을 기울였다. 1918년에는 맨티카(Menteca)지방회에서 개최한 대한인국민회 창립기념식에 참석하여 대한인국민회 역사를 강연하였다. 1919년 8월에는 삭도(朔都, Sacramento)지방회가 개최한 국치기념식에 참석하여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1919년 5월부터는 캘리포니아 메리스벨 지역 파출소 위원으로 선정되어 지방 한인들의 치안과 한인사회 유지에 노력을 기울였다. 1919년 12월 30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주최한 재미국민대회에서 평의원으로 선임되었다. 1921년도 북미지방총회 부회장으로 추천될 정도로 독립운동과 한인사회 발전에 힘을 쏟았다. 같은 해 흥사단(興士團)에 가입하였다. 1924년 태프트지방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까지 대한인국민회 창립, 3·1운동, 국치기념식 등을 주관하며 독립선언서 낭독·국민회 역사 진술 등을 통해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확산해 갔다. 1928년 9월에는 「우리의 할 일」이라는 글을 통해서 한국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혁명당을 조직하여 일치단결할 것을 주장하였다. 1931년에도 태프트지방회회장으로 선임되었고, 1932년에는 나성(羅城, Los Angeles)지방회 재무원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부터 1929년까지 각종 명목으로 독립운동자금을 후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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