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祥秀

祥秀

1889. 2. 16 ~ 1971. 1. 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祥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대덕(大德)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대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덕군 유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9년 2월 16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유성면(儒城面) 지족리(智足里, 현 대전광역시 유성구 지족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면서, 지역의 유림(儒林)으로 활동하였다. 친척 동생인 이권수(李權秀)와 함께 그 해 3월 16일 대덕군 유성면 유성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유성장터 만세운동은 유성에서 일어난 첫 번째 만세시위로, 이후 유성에서는 4월 초까지 여러 차례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초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 취지에 공감하여 이권수와 함께 유성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거사일은 많은 주민들이 모이는 3월 16일 유성장터 장날로 결정하고, 3월 15일 이권수의 집에서 대형 태극기 1장과 소형 태극기 17장 등을 제작하였다. 3월 16일 아침 이권수와 함께 전날 제작한 대형 태극기를 지족리 중심부 높은 곳에 게양하여 “조선이 이미 독립했다”라고 주민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그리고 직접 만든 소형 태극기를 가지고 유성장터로 향하였다. 유성장터에는 많은 주민들이 나와 있었다. 이권수가 장터의 한복판으로 나가 큰 목소리로 장터에 모인 주민들을 향해 “조선이 이번에 독립하게 되어 참으로 기쁜 일이니,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우리와 함께 소리 높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자”라고 열정적으로 연설하였다. 만세시위에 동참하라는 이권수의 호소에 공감한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에 준비한 태극기를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시위대를 지휘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유성시장 곳곳을 행진하였다. 유성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일제 헌병대가 즉각 출동하여 해산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를 거부하고 계속적으로 만세시위를 지휘하다가 일제 헌병들에게 이권수와 함께 붙잡혔다. 이후 모진 조사 과정을 거쳐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 후 다시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이에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