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範雨
範雨1892. 10. 29 ~ 1971. 1.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제천군 제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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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2년 10월 29일 충청북도 제천군(堤川郡) 제천면(堤川面) 모산리(茅山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17일 권종필(權鍾弼)·이기하(李起夏)·전필현(全弼鉉) 등과 함께 제천군 제천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제천은 많은 상인과 주민들의 왕래가 빈번한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일제는 3월 1일 만세운동이 시작된 이래 수비대를 상주시켜 엄중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제천에서는 두 갈래로 만세시위가 준비되었다. 4월 13일 평소 시국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던 봉양면(鳳陽面) 삼거리(三巨里) 사는 권종필(權鍾弼)을 방문하여, 제천에서의 만세시위를 협의하고,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제천공립보통학교 졸업생 장용근(張用根)을 중심으로 제천보통학교 졸업생과 중퇴생들이 또 하나의 만세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4월 16일 일제 경찰에게 사전에 발각되어 태극기는 압수되고, 13명 전원이 체포되었다. 4월 17일 제천장터에서 권종필을 다시 만나 주점에서 만세시위 준비에 대해 협의하던 중, 원세덕(元世德)·이기하(李起夏)·전필현(全弼鉉)이 대화에 참여해 전국적인 만세운동 소식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만세시위를 준비하고 있던 장용근 등 제천공립보통학교의 졸업생과 중퇴생들이 전날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이에 분노하며 사전 발각의 걱정 없이 지금 바로 만세시위에 나서자는 데에 서로 의기투합하여 장터의 한복판으로 나와 즉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오후 6시 권종필·이기하·전필현 등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장터에 나와 있던 1,000여 명의 주민들에게 독립을 위해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취지에 공감한 다수의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면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자, 이들을 지휘하여 제천장터의 곳곳을 행진하고 제천경찰서로 향하였다. 만세시위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 15명의 일제 경찰과 수비대는 무장한 상태로 대기하다가, 시위대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경찰서를 향해 행진해 오자 즉시 해산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시위대가 이를 거부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경찰서로 접근하자, 발포로 대응하였다. 이에 시위 대열의 선두에서 행진하던 이맹삼(李孟三)이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3명의 중상자가 발생하였다. 일제 경찰의 강제 해산 과정에서 권종필·이기하·전필현 등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9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였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해 8월 28일 고등법원에서도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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