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培根
培根188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강동군 강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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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구지면(區池面) 동리(東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37세이므로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31일 강동군 강동면(江東面)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30~31일 강동군 강동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강동면 만세시위는 천도교인들이 주도하였다. 3월 30일 오전 강동면 일대에 거주하는 천도교인 400여 명은 태극기, 천도교의 궁을기(弓乙旗)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강동군청과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삼창을 크게 외치자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한편 원탄면(元灘面)에 거주하는 이동찬(李東贊)이 구지면 나타났다. 이동찬은 마을 사람들에게 서울과 평양 등지에서 독립선언서가 배포되고 만세를 부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동찬의 말을 듣고 그 취지에 공감하여 3월 31일 강동면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31일 강동군 강동면에서 계속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전날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천도교인들과 강동면 일대의 농민들이 시위대로 참여함으로써 시위대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강동면 읍내를 행진하였다. 일제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서 저항하면 발포한다고 협박하면서 시위에 참여한 300여 명을 체포하였다. 3월 31일 강동면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1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이에 “한국 민족으로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은 죄가 아니”라면서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28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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