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命滿
命滿1900. 11. 15 ~ 1986. 4.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영일군 청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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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900년 11월 15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송라면(松羅面) 대전리(大田里, 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태하(李泰夏)를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해 3월 22일 영일군 청하면(淸河面) 덕성리(德城里)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영일군 청하면 덕성리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같은 마을에 사는 윤영복(尹永福)이었다. 윤영복은 예수교 교회 장로파 영수(領袖)로써 신문을 통해서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확산되고 있음을 알고 이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윤영복은 이웃마을 청하면 덕성리 교회 영수 오용간(吳用干)과 족형인 예수교 교사 윤영만(尹永滿)을 찾아가 만세운동에 대한 의지를 말하고 함께 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들이 윤영복의 이야기에 동의하며 구체적인 만세시위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다. 윤영복과 오용간은 각자 자신의 집에서 만세운동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고, 뜻을 함께할 교회 신도들을 규합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2일 윤영복과 오용간은 미리 교회 신도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덕성리 장터에 모이도록 하였다. 오후 1시 윤영복이 큰 태극기를 꺼내어 들자 오용간도 작은 태극기를 품속에서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들의 만세 소리에 기다리고 있던 교회 신도들이 장터 곳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장터에 나왔다가 만세시위에 동참하게 되었다. 장터에 모인 군중과 함께 장터를 벗어나 덕성리 거리를 행진하였다.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그 과정에서 시위 주도 인물 23명이 붙잡혔는데, 이때 함께 붙잡혔다.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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