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斗鉉
斗鉉1902. 8. 10 ~ 19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1919년 고양군 한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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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1902년 8월 10일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한지면(漢芝面) 서빙고리(西氷庫里,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미곡상(米穀商)이었으며, 그 해 3월 고양군 한지면 서빙고리에서 만세시위를 독려하였다. 서울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과 5일에 크게 일어난 이후 한동안 일제 당국의 철통같은 경계 속에서 잠시 소강 국면에 들어섰다. 그러다 3월 23일을 전후하여 서울과 그 근교인 고양군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다시금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양군 한지면 서빙고리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20일 한국이 독립되었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3월 22일 이대흥(李大興)·김삼룡(金三龍)과 함께 모여서 만세시위를 일으키자고 결의하였다. 그날 동빙고리와 서빙고리 일대에 주민들은 모두 나와서 만세를 불어야 한다는 내용의 격문을 붙였다. 3월 24일 ‘독립유지원(獨立有志員)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동·서빙고리 일대에 다시 격문을 붙였는데 격문에는 상점을 철시하고, 주민 모두 조선독립가를 부르고, 제1분기 납세를 거절해야 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주민들이 이러한 지침을 어길 경우 생명과 재산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았다. 구장 권중섭(權重燮)에게 위 내용의 격문을 보내서 마을 사람들과 그 내용을 공유하고 만세시위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유하게 하였다. 하지만 다음날인 3월 25일 권중섭이 일제 헌병에게 격문을 신고하여 동·서빙고리 일대에서 준비하였던 만세시위가 발각되었으며, 일제 헌병에 의해서 붙잡혔다. 이후 조사를 거쳐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한 결과, 같은 해 5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본인의 행위를 정의·인도에 기초한 의사에서 나온 행위임으로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며, 만세를 외치고 격문을 붙이는 일련의 행위가 호걸의 행위라고 들었다면서 어린 나이를 참작해 줄 것을 요구하며, 상고하였다. 그러나 그해 6월 19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었다. 3개월여의 재판과정에서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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