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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斗先

斗先

1901. 9. 25 ~ 1928.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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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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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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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동군 임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1년 9월 25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정산동(鼎山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창(平昌)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中坪洞) 편항시장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1일 임동면 편향시장 만세시위는 유연성(柳淵成)·유동수(柳東洙) 등 8명이 주도하였다. 3월 15일에 편항시장 공동 타작장에서 만나 3월 21일 편항시장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를 펼치기로 결의하고, 각자 임동면 지역을 분담하여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만세운동 계획을 사전에 듣고 만세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거사 당일인 3월 21일 오후 2시 유연성이 군중들 앞에 섰다. 유연성은 군중을 향하여 연설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마을주민들과 함께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시간이 갈수록 많은 군중이 만세시위에 동참하면서 열기가 고조되었다. 이때 급파된 일제 경찰에게 배태근(裵太根)이 항의하다가 뺨을 맞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보고 다른 군중과 함께 분노하며 경찰에게 달려들었다. 시위대의 기세에 눌린 경찰은 주재소로 도망가 버렸다. 일제 경찰을 몰아낸 후 다른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향하였다. 5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에 이르자, 경찰 한 명이 권총을 쏘면서 위협을 하였다. 일제 경찰의 위협에 오히려 분노가 폭발하여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를 공격하고 파괴하였다. 주재소 시위를 마치고 유동수·송병영(宋炳榮)·최도준(崔道俊) 등과 함께 면사무소로 이동해 공격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새벽 3시 경까지 만세시위를 펼치고 다른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다음날부터 실시된 일제 경찰의 만세운동 참여자 체포 작전으로 붙잡혔다. 이후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이감되었다. 같은 해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손괴, 가택침입, 상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 후 다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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