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東洽
東洽188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3)
관련 사건
- · 1919년 중화군 상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3)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상원면(祥原面) 직현리(直峴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당시 35세인 것으로 보아 1885년생으로 추정된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일 중화군 상원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1일에 이미 중화군 상원면의 천도교 교구실에 평양의 만세운동 소식과 함께 독립선언서가 도착하였다. 중화대교구의 전교사 유영환(劉永煥)은 신도들과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논의하였으며 3월 2일에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3월 1일 상면원 천도교 교구실에서 교인들과 함께 상원면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예배날인 3월 2일을 맞아 거사를 벌이기로 하였다. 3월 2일 교구실에 200명 정도가 모이자 중심이 되어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하였다. 군중과 함께 경찰관주재소 앞으로 나아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며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일제 경찰은 체포된 사람들을 끌고 가서 군중에게 해산을 종용하였으나, 시위대는 이에 불응하였으며 오히려 중화경찰서장 다카나와 기쿠지(高索菊治)와 순사부장 다무라 사부로(田村三郞), 순사보를 포위하였다. 김동식(金東植)과 함께 경찰의 칼을 빼앗고 돌과 몽둥이로 이들을 구타하였다. 군중에 기세에 놀란 경관들이 도망가자 군중과 함께 경찰관주재소로 나아가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