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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東天

東天

1889. 2. 25 ~ 1924.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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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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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務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무안군 외읍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9년 2월 25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외읍면(外邑面, 현 무안읍) 성내리(城內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이동천(李東川)이다. 1919년 3월 20일 전남 무안군 외읍면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외읍면에 거주하던 정순홍(丁淳紅)과 김순기(金順淇)는 주변 동료 10여 명과 함께 외읍면 일대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3월 19일 밤 김순기의 집에 모여, 다음날인 3월 20일 외읍면 장날을 맞이하여 시내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밤새 태극기 수십 장과 일본에 빌붙어 부역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독립 선언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경고문 수십 장을 제작하였다. 3월 20일 새벽부터 외읍면 일대에는 태극기가 그려지고 ‘조선독립만세’의 글귀가 눈에 띄는 경고문 수십여 장이 배부되었다. 이어 오전 11시 무렵에는 주도자 10여 명이 외읍면 남산(南山)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로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경고문을 읽고 만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기뻐하며 이들에게 합류하여, 시위대의 수는 점점 불어갔다. 이 때 시위대에 합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무안보통학교까지 진출한 시위대와 함께 학교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면서도 만세를 불렀다. 이후 다시금 시내를 행진하면서 세를 불려, 오후 2시 무렵에는 규모가 500여 명에 이르렀다. 이에 놀란 무안군수와 목포경찰서장이 각기 병력을 이끌고 와서 시위대와 대치하였는데, 쉽사리 시위대를 해산시키지 못하였다. 이에 오후 10시 30분 무렵까지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치다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이 주도자 체포에 나서면서 붙잡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3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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