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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東振

東振

1902. 6. 15 ~ 1973.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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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東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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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간성(杆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간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1919년 간성군 간성면 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902년 6월 15일 강원도 간성군(杆城郡) 간성면(杵城面, 현 고성군 간성읍) 하리(下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간성군 간성면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개성 한영서원에 다니던 중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후 고향 간성으로 내려와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촉구하는 선전문을 작성하였다. 선전문에는 “대한국은 일본에게 병합되어 있지만 지금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문명의 교육을 받은 생도들은 어찌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르지 않으리오”라고 하며 의기(義氣)를 담아 작성하였다. 선전문을 작성하여 간성보통학교 학생 함기석(咸基錫)에게 주면서 정서(正書)하여 4학년 교실 입구 벽에 붙이게 하였다. 선전문을 받은 함기석은 이를 4학년 교실 입구에 붙였고 이를 본 간성보통학교 학생들은 만세운동과 조국의 독립에 대하여 각성하게 되었다. 학생 중 정종구·남기일·이응규 등이 주도하여 장이 서는 간성읍에서 만세운동을 펼칠 것을 결의하였다. 전교생이 학교 운동장에서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장터로 가기 위하여 교문을 나가려고 하였지만 제지당하고 말았다.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학생들을 막고 주도자 등을 체포하였다. 주도자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선전문이 만세시위를 일으키게 한 촉매제가 되었음을 알게 되면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12일 함흥지방법원 원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7월 14일 상고를 취하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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