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永善
永善1889. 1. 15 ~ 1978. 6.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진룡 의병부대
- · 대한독립단
- · 대한통의부
- · 정의부
- · 한중항일동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9년 1월 15일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연방면(蓮芳面) 마산리(馬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진태(李震台)이다. 이진룡(李鎭龍)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으며,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만주로 건너가 각종 군사활동과 사회활동에 참여하였다. 1905년 박정빈(朴正彬)·조맹선(趙孟善) 등과 함께 황해-평안-강원의 경계지역의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이진룡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 해 4월 펑톈성(奉天省) 류허현(柳河縣)에서 박장호(朴長浩)·조병준(趙秉準)·조맹선 등의 주도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이 결성되자, 이에 참여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9월 펑톈성 콴뎬현(寬甸縣) 북구(北溝)에서 퉁화현(通化縣)으로 일본영사관 경찰 2명을 처단하였다. 1920년 대한독립단의 연계망이 있던 서북지역으로 잠입하였고, 같은 해 4월경 김용택(金龍澤)·맹성록(孟性祿) 등을 통솔하여 국내에서 활동하던 천마산대(天麻山隊)와 함께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20년 6월 2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 평안북도 삭주(朔州)의 참의(參議)로 활동하다가, 이후 고향인 송화군에서 독립의용대를 조직하여 백인선(白仁善)·김두원(金斗原) 등과 활동하였다. 이 무렵 손일민(孫一民)과 함께 연계하여 길림(吉林) 지역으로부터 폭탄과 권총을 콴뎬현의 독립단에 수송하는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국내에 재잠입하여 1921년 1월 황해도 일대에서 독립단의 특파원으로서 계응련(桂應連)·김귀현(金貴鉉)·최창한(崔昌翰)·홍완기(洪完基) 등과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일제에 포착되어 1922년 3월 이화익(李化翼) 등과 함께 상하이(上海)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만주로 이동하였다. 이후 대한광복단총영(大韓光復團總營)에 합류하여 활동하였으며, 1922년 남만주 일대의 독립군단 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참여하였으며, 같은 해 8월 23일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결성될 때 대한광복단총영의 대표로 변창근(邊昌根)과 함께 참여하였다. 1923년 1월경 동지 맹성록·김우근(金宇根)·허운기(許雲起) 등과 독립소대로서 대한군민부(大韓軍民府)를 조직하고 군사(軍司)를 역임하였다. 길림성 임강현(臨江縣)을 주요 근거지로 하여 맹성록·최상선(崔相善)·임병무(林炳武)·함창실(咸昌實) 등과 국내로의 잠입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4월 1일 육군군사회의(陸軍軍事會議)의 경고문에 김우근·허운기·현기룡(玄基龍) 등과 함께 독립소대의 대표로 참가하여 독립운동단체들의 대립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해 11월 통의부 주도파가 새롭게 결성한 정의부(正義府)에 참여하여 민정 및 식산흥업운동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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