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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春應

春應

1890. 5. 13 ~ 195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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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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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唐津)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당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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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서산군 대호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0년 5월 13일 충청남도 당진군(唐津郡) 대호지면(大湖芝面) 두산리(杜山里)에서 아버지 이수인(李秀仁)과 어머니 김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농업에 종사하였고, 의령 남씨 문중에서 설립한 도호의숙(桃湖義塾)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1919년 4월 4일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貞美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지역 유생들과 함께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였고, 이후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열기가 서산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는데 자극제가 되었다. 이러한 유생과 지역 유지의 뜻을 모아 만세운동으로 구체화한 것은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이었다. 1919년 3월 26일 대호지면사무소에서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훈(姜泰壎)·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회합을 갖고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다음 날인 3월 27일 다시 모여 김동운이 “(장날인) 4월 4일 오전 8시 경까지 도로 수선을 위해 면민 각호 1명씩 집합하라는 공문을 작성해 구장들에게 배포하고 정미면 천의리(天宜里)의 천의시장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자”라고 실행 방안을 제안하였다. 4월 3일에는 송재만이 9개 마을의 구장들에게 면장 명의로 도로 수선을 위해 집합하라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전달하며 주민들에게 고지하도록 부탁하였다. 4월 4일 아침 공문의 지시에 따라 약 500명의 면민들이 도로수선을 위해 집결하자, 면장 이인정은 “여러분을 모이게 하였음은 도로 수선을 하고자 함이 아니라 조선 독립운동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니 여러분은 이에 찬동하여 조선독립만세를 힘차게 부르며 정미면 천의시장으로 향하라”라고 연설하였다. 이후 이인정이 인솔하는 시위대와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천의시장을 향해 행진하였다. 오전 11경 천의시장에 도착한 1,000여명의 시위대와 더불어 곧바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이 발포하였고, 시위대는 천의주재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는 한편 일본인 순사와 순사보 등을 구타하였다. 이후 당진경찰서에서 파견된 무장 경관 니미야(二宮)와 다까시마(高島)가 권총을 쏘며 시위 군중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또한 다음날 새벽 홍성(洪城)에 주둔한 수비대 1소대가 대호지면에 도착해 주도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도 체포되었다. 이때 일제 군경에게 붙잡혀 4월 23일 구류되었고, 5월 13일 기소되었다. 이 일로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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