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圭鶴
圭鶴1896. 2. 10 ~ 1973. 12.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흥무관학교
- · 다물단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의열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밀정 김달하 처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6년 2월 10일 현재 서울 종로구 통인동(通仁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 이후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과 달성 서씨(達成徐氏)의 둘째 아들이다. 부인은 고종의 매부이자 흥선대원군의 둘째 사위였던 조정구(趙鼎九)의 딸, 조계진(趙季珍)이다. 1910년 12월 모든 재산을 처분한 부친 이회영을 따라 집안사람들과 함께 만주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추가가(鄒家街)로 이주하여 국외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였다. 이곳에 설립된 신흥강습소에 입학하여 독립전쟁 수행을 위한 군사훈련을 받았다. 1913년 신흥학우단(新興學友團)에 가입하였다. 이 단체는 1913년 3월 신흥강습소 교장 여준(呂準)과 교감 윤기섭(尹琦燮)이 주도하여 신흥강습소의 졸업생의 결속과 건학정신(建學精神) 구현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1917년에는 광무황제(고종)를 베이징(北京)으로 망명시켜 정부를 세울 이회영의 계획으로 부인인 조계진과 국내로 잠입하였다. 황실과의 신부례(新婦禮)를 명목으로 광무황제와 이회영 사이에 망명정부 수립을 논의하였지만 이후 광무황제의 사망으로 이러한 계획은 무산되었다. 1923년 베이징에서 이회영과 유자명(柳子明)의 도움을 받아 이규준(李圭駿) 등과 함께 다물단(多勿團)을 조직하였다. 다물단은 일제 밀정(密偵) 처단을 목표로 하는 비밀결사 독립운동 단체였다. 베이징에서 독립운동가로 행세하던 일제의 밀정인 김달하(金達河)를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의열단원 이인홍(李仁洪)과 이기환(李箕煥)과 합작하여 1925년 3월 30일 김달하를 처단하였다. 이 사건의 여파로 상하이(上海)로 피신하여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상하이에서는 외국인이 경영하는 버스회사에 검표원으로 일하였다. 이때 받은 45원의 월급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생활비로 보태며, 임시정부의 일을 도왔다. 1932년 4월 윤봉길(尹奉吉)의 홍커우(虹口) 공원 의거 이후 상하이와 쑤저우(蘇州) 등의 지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 헌병대에 잡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일가족과 함께 1946년 5월 상하이에서 국내로 환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차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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