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今玉
今玉1864 ~ 1908. 10.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포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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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8) 경기도 포천군(抱川郡) 화산면(花山面) 시동(詩洞, 현 포천시 가산면 인근)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8년 재판 당시 45세로 1864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12월에 의병을 일으켜 포천군·양주군(楊州郡)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였다. 의병활동에 나선 당시는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광무황제(고종)가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 군대도 강제해산 당함에 따라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여 활발한 의병항쟁이 전개되던 시기였다. 1907년 (음)12월에 포천군 서면(西面, 현 포천시 포천읍) 현국장산(玄局長山)에서 한용성(韓用成)·정석만(鄭錫萬)·안경숙(安慶肅)과 함께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정한 뒤 수명의 인원을 모아서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이후 포천군과 양주군을 돌며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다. 1907년 (음)12월에 포천군 괴학리(槐壑里) 동장 원봉서(元奉西)에게서 군자금 20원을, 석우리(石隅里, 현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에 사는 이진사(李進士)에게서 100원을, 지석촌(支石村, 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 지석동마을)의 이참봉(李參奉)에게서 50원을, 양주군 가좌동(加座洞, 현 의정부시 가능동) 원경춘(元敬春)에게서 돈 9원을, 포천군 말미(末味, 현 포천시 가산면 마산리 말미마을)에 사는 이덕경(李德京)과 원경춘에게서 각각 25원과 22원을, 다대울(多大蔚, 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사는 성참봉(成參奉)에게서 20원을, 같은 동네 사는 김유복(金有福)에게서 14원을, 마치리(麻治里, 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 마치동)에 사는 이존위(李尊位)에게서 11원을, 같은 마을에서 고장미(高長味)·김선달(金先達)에게서 40원을, 용상곡(龍上谷, 현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 인근) 전무투리(田無投里)의 집에서 20원을, 솔미 사는 김문여(金文汝)에게서 20원을 모집하였다. 이러한 군자금 모집 활동은 1908년 2월까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짧은 기간에 이처럼 활발한 군자금과 군수품 모집이 가능했던 것은 의병부대를 이끌었던 동료들과 의병대원들이 모두 같은 포천군과 양주군 출신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다 일제 헌병대에 붙잡혀서 1908년 10월 2일 경성공소원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교(絞)형을 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으며, 1908년 10월 30일에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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