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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儀景

儀景

1899. 3. 8 ~ 1950.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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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儀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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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해주(海州)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해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민국청년외교단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대한적십자회
  • · 고려학우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9년 3월 8일 황해도 해주군(海州郡) 주내면(州內面)에서 태어났다. 출신지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해주면(海州面) 서영정(西榮町)으로 편입되었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이의경(李義儆)과 이미륵(李彌勒)·이의경(李義敬)이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한 이후 대한민국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 상하이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에서 활동하였고, 1920년 독일로 망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해주보통학교(海州普通學校)를 졸업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재학 중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후 1919년 5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국내 상황을 공유하고, 독립운동자금 모집 및 전달, 각종 인쇄물을 작성·반포하여 독립 여론 조성 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이 결성되자, 이에 가입하여 편집부장(編輯部長)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외교원의 해외파견 및 기관지 『외교시보(外交時報)』 등 선전물의 발간을 주도하였고, 또 같은 해 8월 29일 국치기념일(國恥紀念日)을 기념하여 거행한 이른바 ‘제2회 독립만세시위’에서 만세시위 때 사용되었던 「경술국치경고문」 등의 선전물 인쇄를 책임져 발행하였다. 이렇게 활동하던 중 1919년 11월 말 조직이 일본 경찰에 발각됨으로써,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궐석재판에 회부되어 1920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경성의학전문학교를 그만두고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한국의 독립전쟁에서 구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한적십자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5월 26일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사촌동생인 안봉근(安奉根)과 함께 독일로 망명하여 뮌스터슈바르차하(Münsterschwarzach) 수도원에 정착하였다. 이후 뷔르츠부르크(Wurzburg) 대학과 하이델베르(Heidelberg) 대학을 거쳐 뮌헨(München)대학에서 의학과 동물학 등을 전공하기도 하였다. 1925년 11월에는 재독일 동포 단체인 고려학우회(高麗學友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27년 2월 5일부터 14일간 벨기에 브뤼셀(Brussels)에서 개최되어 하층 계급과 피압박 민족 보호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피압박민족대회에 조선인 대표단으로 김법린(金法麟)·이극로(李克魯)·황우일(黃祐日) 등과 참가하여 활약하였다. 1928년 7월 뮌헨대학에서 동물학, 철학, 생물학을 전공하여 이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고, 1930년 초부터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1946년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sst)」라는 자전적 소설을 발표하여 독일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 소설은 독일 교과서에까지 실리게 된다. 이외에도 「무던이」,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이상한 사투리」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1948년부터 1949년에는 뮌헨대학 동양학부에서 한학, 한국어 및 문학을 강의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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