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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起巽

起巽

1877. 2. 14 ~ 1957.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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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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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羅州)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호남동의단 제7진
  • · 전해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독립장(1977)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77) 1877년 2월 14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본량면(本良面) 북산리(北山里,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북산동) 장등(長燈)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안식(安植), 호는 금재(錦齋)·연해(淵海)·용섭당(龍攝堂)이다. 호적의 이름은 준수(準水)이며, 이명은 이안석(李安石)이다. 아버지 농포(農圃) 이영의(李榮儀)와 어머니 청안이씨(淸安李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생 가문에서 가학을 익히며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고 할 만큼 주위의 촉망을 받으며 자랐다. 열 살을 전후해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제자로 이름이 높은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의 문하에서 배우게 되었다. 이 무렵 오병수(吳炳洙)의 딸 대명(大明)과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나주와 광주(光州)를 휩쓸었으며, 1년 여 뒤에는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등으로 인해 세상이 어지러웠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이학상(李鶴相)·정석진(鄭錫珍) 등의 주도로 장성(長城)과 나주를 중심으로 전라도 최초의 의병이 일어났다. 을사늑약 후 1907년 10월을 전후하여 영광(靈光)과 장성의 유생들을 중심으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가 결성되어 기삼연(奇參衍)을 맹주로 삼아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기삼연 의병부대에 참여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호남창의회맹소의 선봉장 김태원(金泰元)의 휘하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8년 2월 이후 의병장 기삼연과 김태원이 잇달아 별세하자 스스로 새로운 의병부대를 편성하였다. 1909년 초를 전후하여 용진산(聳珍山)을 근거지로 삼아 독립된 의병부대를 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9년 (음)3월 2일자로 격문을 발송하였는데, 이 격문은 그해 5월 9일 무안(務安) 읍내 공자묘를 관리하는 윤자신(尹滋信) 집에 도착했음을 무안부윤이 보고하였다. 앞서 같은 해 5월 4일 나주방면에서 보발편(步撥便)으로 (음)3월 9일자 통문을 전라남도 관찰사 신응희(申應熙) 앞으로 보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이 무렵 전남 관찰사와 향교나 서원 등지에 독자적인 의병부대의 출범을 알렸다. 격문과 통문을 통해서 군사학에는 어두우나 국가의 위급함을 좌시할 수 없어서 동지들과 밤낮으로 의병을 도모했으며 정예의 병사를 모으고 무기를 조달하여 왜적을 섬멸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선봉 엄동운(嚴錫雲)·중군 양동환(梁東煥)·후군 오용근(吳鎔根) 등과 더불어 멀리 무안군 지도(智島)에 가서 2명의 적군을 처단했으며, 주민들에게 머지않아 정병을 육성하고 무기를 수선하여 바다와 육지에서 일제 군경과 친일 세력을 구축(驅逐)할 터이니 놀라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1909년 6월 16일 나주분견소 임곡(林谷,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임시파견소 헌병대와 교전하였으며, 같은 해 7월 4일에도 함평군 월악산(月岳山)에서 일본 헌병대와 싸웠다. 그 해 8월 함평군 적량면(赤良面) 출신의 이화삼(李化三)을 선봉장으로 임명하여 농부로 가장하여 항일투쟁을 지속하였다. 의병들을 약 50명 내외의 소규모 의병부대로 편성하여 나주·함평·무안 등지의 연해와 산악지대를 무대로 유격전을 펼쳤다. 1908년 겨울 전라도에서 활동하던 의병부대들은 일제 군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연합전선을 구축하였다. 전해산(全海山)과 심남일(沈南一) 의병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전라도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11개 의병부대가 참여하여 호남동의단(湖南同義團)을 결성하였다. 여기에 제7진 의병장으로 참여하였다. 전라도 의병들이 강력한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일제 군경에 대응하자, 일제는 이들을 완전히 진압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작전인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을 실시하였다. 1909년 9월부터 약 두달간 실시된 이 포위 작전으로 인해 전라도 의병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1909년 10월 하순까지 일제의 집요한 추적을 피한 8명의 의병장에 포함되었다. 일제의 대규모 군사작전이 단행되자 의병부대를 해산한 후 군산(群山)에서 청진(淸津)을 거쳐 연해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러나 일이 여의치 않아 약 5년 만에 귀국하여 당시 전북 금산군(錦山郡, 현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이연해(李淵海)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신분의 노출을 우려하여 김씨와 혼인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금산군 금성면(錦城面) 파초리(芭蕉里) 장목(長睦) 마을에서 서당을 개설하여 제자를 양성하였다. 1940년 금성면 하산리(下山里) 잠실(蠶室) 마을에 고종과 순종의 필적을 모신 어필각(御筆閣)과 사당인 숭봉전(崇奉殿)을 세웠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홍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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