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基燮
基燮1883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동수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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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5)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출신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909년 당시 27세이므로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1909년 김동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가 별개의 의병단을 조직하여 직접 의병부대를 이끌고 전남 광주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7년 6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에 이어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서울과 원주(原州)에서 군인들의 무장 봉기를 시작으로 정미의병의 전국적 의병무장 항쟁이 전개되었다. 1908년 동향인 광주 출신의 김동수(金東洙)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벌이다가 스스로 부대를 조직하였다. 1908년 12월에서 1909년 5월 초까지 광주에서 십 수명의 의병들과 함께 활동하였는데, 의병장으로 두 개의 총열을 가진 엽총(獵銃)과 칼로 무장하였으며 순사모와 유사한 것을 착용하였고 의병들은 평소 일상의 한복을 입고 있다가 작전 시에는 갈색이나 검은색의 옷으로 갈아 입었다고 한다. 그러나 의병 활동 중 1909년 5월 6일 소재를 파악한 광주경찰서 소속 순사 야마키 고타로(山木好太郎) 등 순사 3명에 의해 광주군 석제면(石堤面) 외촌리(外村里, 현 광주광역시 북구 연제동)에서 붙잡혔다. 1909년 6월 9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 강도죄, 모살죄 등으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7일 항소를 취하하였다. 옥고를 겪던 중 1912년 칙령 제23호에 의해 징역 5년으로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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