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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基石

基石

1873 ~ 1909.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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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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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淸州)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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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3)

관련 사건

  • · 대한제국 군대해산
  • · 정미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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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3)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출신이다. 일제 측 판결문에 따르면, 1908년 당시 36세이므로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5살 위인 동향인 배창근(裵昌根)과 함께 청주진위대(淸州鎭衛隊)에서 군인으로 복무하였는데 육군하사(下士)인 배창근 휘하의 병사였다. 그러나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후속 조치로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와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무장 봉기를 시작으로 정미의병(丁未義兵)의 항일 무장항쟁이 전개되었다. 배창근과 1907년 7월 군대 해산 후 일본에 대한 깊은 한을 품은 채 고향에서 각자 농업과 염곽상(鹽藿商, 소금과 김, 미역 등을 판매)에 종사하고 있던 중에, 같은 해 8월 25일 의병 진압 중 낙오한 일본 육군 보병 이등병 시마다 세이고로(島田淸五郞)와 구리 도메키치(栗留吉)가 청안군(淸安郡) 근서면(近西面) 구정탄(九政灘, 현 증평군 증평읍 연탄리 인근) 김응서(金應西)의 주막에 묵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배창근·서쾌준(徐快準)·노영섭(盧榮涉)·설영천(薛永淺)과 함께 일본군 병사들을 처단하기로 계획하고 닭을 잡자는 구실로 인근 지역인 충북 진천군(鎭川郡) 초평면(草坪面) 부근으로 유인한 뒤 이들을 총으로 사살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1908년 11월 9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모살죄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09년 5월 20일 경성공소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7일 대심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1909년 7월 17일 경성감옥에서 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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