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起商
起商1871. 2. 2 ~ 1915. 6.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허위 의병부대
- · 대한의군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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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5) 1871년 2월 2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적곡면(赤谷面, 현 장평면)에서 태어났다. 유생집안 출신으로, 1908년 당시에는 경기도 양주군(楊州郡)에 거주하고 있었다. 1907년 유학자 출신 의병장 허위(許蔿)가 의병을 일으키자 의병부대에서 비서(秘書)로 활동하였다. 1908년에는 의병의 무기 구입을 도왔으며 1913년에는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 이하 대한의군부)에 참여하였다. 허위의 의병부대에 합류한 1907년은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후속 조치로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전국적인 항쟁이 시작된 해였다. 1908년 한성부(漢城府) 재동(齋洞,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재동) 장순원(張順遠)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었다. 친구 이계복(李啓福)으로부터 이인영(李麟榮) 의병부대의 일원으로 화약을 제조할 염초(鹽硝)를 구입하기 위해 상경한 김창식(金昌植)을 소개받았다. 김창식의 서울 숙소를 알선해주고 무기와 염초를 구입할 수 있도록 돕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08년 6월 6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7년을 받았다. 이듬해 8월 충남 청양에서 이용규(李容珪)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가 다시 김창식과 함께 붙잡혔다는 기록이 있는데 감형을 받아 풀려났다가 다시 붙잡힌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의 한국 강제병합 후에도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913년 9월 임병찬(林炳瓚)이 주도한 대한의군부에 합류하였다가 허위의 사위인 동생 이기영(李起永), 동지 김창식과 함께 1914년 다시 붙잡혀서 옥고를 겪었다. 1915년 6월 3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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