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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兢淵

兢淵

1847. 11. 3 ~ 1925.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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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兢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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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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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안동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2)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2) 1847년 11월 3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와룡면(臥龍面) 주하리(周下里)의 주촌(周村, 두루실)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자는 희증(希曾)이고 호는 유수각(流水閣), 이명으로 이목연(李穆淵)을 썼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집안이면서 대종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1896년 1월 안동 지역의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을미의병을 일으키자, 여기에 참여하였다. 퇴계 이황의 적전(嫡傳)으로 평가받는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제자가 되었다. 김흥락은 1896년 1월 17일 봉정사(鳳停寺)에서 진행한 향회(鄕會)에 참석한 이후로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후 같은 달 19일에는 호계서원(虎溪書院), 다음날인 20일에는 안동향교에 1만여 명의 유생이 모여 들면서 의병을 일으키는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진행되었다. 이때 김흥락·김도화·유지호(柳止鎬) 등이 논의를 주도한 끝에 의병장을 권세연(權世淵)으로 추대하고, 안동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이때 의병부대의 간부로 선출되지는 않았지만 안동 의병부대를 오가면서 그 활동을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안동 의병부대는 간부 편성 후 즉각 단발령을 지시한 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을 체포하기 위해 안동관찰부를 급습하였다. 이후 안동의병부대는 1월 24일, 관군 300여 명과 일본군 100여 명이 안동의 관문인 예천(醴泉)에 집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선봉장 김옥서(金玉瑞)와 중군장 유완(柳碗), 우익장 권용현(權用賢), 좌부장 이의호(李宜鎬) 등을 차례로 파견해 29일까지 대치하였다. 그러나 1월 29일 안동과 예천의 접경지대에서 안동의병부대는 관군과 일본군의 공격에 전열이 무너진 후 패퇴하고 말았다. 이때 의병부대의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부대 파견을 전송하고 전투 정황을 살폈다. 안동 의병부대가 패배하자 다시 돌아온 관찰사 김석중은 주민 일부를 선별하여 강제로 단발을 자행하였고, 일본군은 안동·예천·영천(榮川, 현 영주)·선성(宣城) 등지에서 횡포를 자행하였다. 이에 이중린(李中麟) 등이 흩어진 선성 의병부대를 이끌고 인근의 청량산에서 회합을 가졌고 안동에서도 흩어진 의병들이 모이게 되었다. 결국 2월 25일 권세연은 다시 안동 의병부대를 이끌고 안동부에 재입성한 후 선성 의병부대, 영천 의병부대와 함께 안동향교에 진을 친 후 조직을 재편성하였다. 이 무렵 문중의 후원금 50민(緡)을 향회로 보내 의병을 돕는 한편, 의병장 권세연을 옹천(甕泉, 현 안동시 북후면 소재지)에서 만나 안동 의병부대의 재기를 함께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 공으로 인해 권세연에 의해 안동 의병부대의 간부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48세의 나이와 병세의 악화로 인해 직을 거절하고 계속해서 진중을 오가면서 안동 지역의 문중에 할당된 후원금을 모으고, 유력 인사를 만나 의병부대를 후원하도록 도왔다. 3월 12일, 안동 의병부대는 의병장 권세연이 사퇴하고 김도화가 새로운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의병부대는 보다 전투적으로 편제되었고 풍기(豐基)·순흥(順興)·영천(榮川)·봉화(奉化)·선성·호서 의병부대와 연합 의병부대를 형성하였다. 이어서 일본군의 병참이 위치한 태봉으로 진격했으나, 3월 28일 전개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다. 패배 후 안동 의병부대의 활동은 소강상태에 빠졌고, 4월 이후 봉정사에서 잠시 재기를 도모하다가 실패하였다. 5월 23일 종사관(從事官)에 임명되어 의병부대 합류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곳곳에서 자행된 일본군의 의병 소탕 작전으로 인해 의병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의병부대에 대한 소식도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합류하지 못하였다. 결국 안동 의병부대는 세력이 소멸되었고, 일기에서도 7월 이후 의병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1896년 1월 15일부터 1896년 11월 15일까지 약 11개월의 의병활동 상황을 날짜별로 상세히 기록한 일기 자료인 『을미의병일기(乙未義兵日記)』를 남겼다. 이 기록을 통해 단발령이 을미의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정황과 안동 의병부대의 조직과정, 상세한 전투 상황에 대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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