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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哲

相哲

1876 ~ 1905.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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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相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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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靈巖)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영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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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독립장(1962)

관련 사건

  • · 을사늑약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2) 전라남도 영암(靈巖)에서 이낙원(李樂源)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록에 따르면 1876년생으로 추정된다. 본명은 이근석(李根奭)이었으나, 1905년 10월 이상철로 개명하였다. 부친 이낙원은 충청도 출신의 유학자로, 1806년 병비(兵批) 관원으로 제수되었다. 1904년 9월 15일 학부 주사(學部 主事)로 임명되어 관직에 올랐다. 당시 한성부(漢城府) 북서(北署) 가회방(嘉會坊)에 거주하였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제로 체결하자 전국적으로 국권 침탈에 반대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민영환(閔泳煥)·조병세(趙秉世) 등의 고위 관료들이 일제에 항거하기 위하여 자결 순국을 선택하자, 이들의 뜻을 받아 1905년 12월 3일 음독 자결하였다. 고종은 조령(詔令)을 내려 “충의와 울분이 격발하여 강개한 심정에 목숨을 끊었다”면서 신하들에게 “뜻이 가엾고 절개가 가상하니 관판(棺板) 1부(部)를 제급(題給)하고 특별히 학부 협판(學部 協辦)에 추증하며 정문(旌門)을 세워주는 은전을 시행하라”라고 지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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