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如春
如春미상 ~ 1923. 11. 8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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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신지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만주로 이주한 이후 중국 펑톈성(奉天省, 현 랴오닝성) 푸쑹현(撫順縣)에서 거주하였다. 1920년대 초반 남만주지역 통합독립운동 조직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과 1920년의 ‘경신참변(庚申慘變)’ 이후로 만주지역의 민족운동은 복벽주의와 공화주의의 이념 차이와 여러 군소 단체의 난립을 넘어서는 큰 단위의 단결행동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요구 속에서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면서 1922년 8월 23일에 총장 김동삼(金東三), 부총장 채상덕(蔡相悳) 등이 대한통의부를 창설하여 남만주 일대의 독립군조직을 모두 통합하게 되었다. 이때 대한통의부에 참여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대한통의부 내 복벽주의자와 공화주의자 간의 분열이 심화되어, 1923년 2월경 전덕원(全德元)·채상덕 등의 복벽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의군부(義軍府)의 이탈로 인해 종래 대한통의부 활동권역 내에서 조세수입 및 군자금 조달에 있어서도 분열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푸쑹 지역 총관이 설치되어 이의주(李義柱)가 임명되었다. 이때 이의주 배하에 소속되어 이용갑(李用甲)·김덕삼(金德三)·김창선(金昌善)과 함께 대한통의부 활동을 하였다. 대체로 서간도 일대의 부일 세력과 친일 부호 등에게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11월 8일 안둥(安東)-펑톈 간의 철로 인근지역이자 푸쑹 부근 포가둔(鮑家屯)에서 동료 김덕원(金德元)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던 중,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교전 끝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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