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成允
成允188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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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6) 평안남도 성천군(成川郡) 성천면(成川面) 하부리(下部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0년 체포 당시 41세로,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성천 장로교회 조사(助師)로 근무하였다. 1919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7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비밀결사 대한국민회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8월 3일 「대한독립의견서」를 작성해 성천군 내 청년들에게 회람하게 하였다. 동일(同日) 밤 9시 성천면 황준목(黃俊穆)의 집에 모여 협의한 결과, 조선독립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다고 결의한 후 성천청년회(成川靑年會)를 조직하였다. 1919년 9월에는 대한국민회 본부 총무 박승명(朴承明)을 만나기 위해 평양(平壤)으로 가서, 숭실학교(崇實學校) 뒤뜰에서 박승명에게 「대한국민회 취지서」와 규칙, 『독립신문』 4부를 받아서 성천으로 돌아왔다. 이후 성천청년회를 대한국민회 성천지회(成川支會)로 개편하여 회장에 취임하고 회원 모집 활동에 나섰다. 그 후에도 평양에 자주 왕래하며 대한국민회 본부와 연락을 취했고, 박승명에게 회원증 100장을 받아 회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대한국민회 성천지회 명의로 의연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로 송금하고 『독립신문』과 경고문 등을 제작해 시내에 배부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20년 6월 16일 동지 10명과 함께 성천경찰서에 붙잡혔다. 1921년 6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6월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문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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