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錫仁
錫仁1872. 6. 25 ~ 1947. 2.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72년 6월 2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덕정리(德井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은 서당 훈장 민영갑(閔泳甲)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영갑은 전국적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한 후 평소 신뢰하고 있던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4월 1일로 예정된 연극 공연에 많은 주민들이 모일 것을 예상하여 이 자리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민영갑 등은 거사 당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자택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 관객으로 입장하여 만세운동을 시작할 기회를 탐색하였다. 이들은 공연 중인 연극이 끝나지 않은 오후 8시경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며 동참하라고 호소하였다. 이들의 호소에 공감한 관객 수십 명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연창하였다. 이에 연극 공연장은 만세시위로 흥분된 분위기였으나, 곧이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본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결과,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